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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저널

보고 싶다 엘리엇 (Are you available?)

온유한교회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저의 목회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중고등부 전도사 시절 제가 섬기던 교회는 미국교회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각종 악기와 음향장비를 설치해야 했었고, 예배 후에는 옆 건물 2층에 있는 창고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혼자서 하면 1시간 정도 걸리는 힘든 일이지만 사랑하는 청년들의 도움으로 15분이면 마칠 수 있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12월 어느 주일, 비가 조금씩 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중고등부 예배에 새로 온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그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줘야 했기에 청년들과 젊은 집사님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습니다.

 

"형제님, 집사님, 오늘 처음 우리 교회에 나온 학생들을 집에 데려다 줘야 해서 오늘은 악기 정리를 제가 못할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잠시 후 2부 순서가 끝나면 곧바로 뒷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청년들 중에 엘리엇이라는 대학생 새내기가 있었습니다. UCLA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청년인데 재정적 어려움으로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함께 기도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한 교수님께서 장학금을 받도록 연결시켜 주신다고 해 그날 오후에 교수님과 자선가를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엘리엇은 차가 없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UCLA로 향하고, 저는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20분 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든 생각은 "악기 정리는 아무 문제 없겠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악기가 다 젖지는 않을까?" 아이들을 다 내려 주니 1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가는 운전대를 돌려서 다시 교회 쪽으로 향했습니다.

 

파킹장에 도착하니 차가 한 대도 없는데, 교회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도둑이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차를 좀 멀리 주차하고 비를 맞으며 살금살금 교회쪽으로 가서 담벼락 뒤에 몸을 숨기고 대문 쪽을 엿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외투를 뒤집어 쓰고 예배당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놀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보니 그 남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엘리엇.

 

장학금을 받으러, 교수님을 만나러 학교에 간다던 그 청년 엘리엇이었습니다. 악기가 비에 젖지 않도록 옷으로 감싸고 홀로 비를 맞으며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엘리엇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니, 엘리엇,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너 오늘 장학금 받으러 학교에 간다고 했잖니?"

 

엘리엇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악기와 음향기기 뒷정리를 돕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돌아와 아무도 없는 그 빗속에서 홀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엇, 나한테 전화해도 되는데, 왜 연락을 안했니? 너 혼자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랬니?"

 

그 순간 엘리엇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I am a servant of God."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은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21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죄가 없는 거룩한 그릇일까요? 그런 뜻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깨끗한 그릇은 available한 그릇입니다. 주인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손으로 집으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available한 그릇입니다. 엘리엇은 하나님께 available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히 사용할 그릇 하나가 필요했을 때, 다 집에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그 순간에 available 했습니다.

 

그날 엘리엇은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장학금도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엇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셨고 다른 방법으로 학비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4년 동안 학비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엘리엇이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3-4명 모이던 중고등부가 엘리엇이 교사로 있는 동안 30명이 모이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릇은 Ability가 아니라 Availability입니다.